
코드 한 줄 못 쓰는 박사, 37일 만에 SaaS를 출시하다 —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백지에서 라이브까지 — 37일 동안 실제로 쌓인 것
막대에 마우스를 올리면 그 주에 만든 것이 아래에 나타납니다 · 노랑 = 일요일과 라이브 당일
- Next.js + PowerSync 로컬퍼스트 배선
- 세 뷰 원형 — 할 일·캘린더·아카이브
- 한 항목이 세 화면에 동시에 사는 구조
- 리치 에디터·다크 모드·인증 착수
- 랜딩 데모 + 마케팅 영상(Remotion)
- 6/14 결제(Polar) 스파이크 — 하루 27커밋
- 구독 4단 요금제·보안(RLS) 격리
- ko / en / ja 3언어 국제화
- 약관·개인정보 등 법무 문서
- Gcal 양방향 동기화 엔진(6/22)
- 멀티에이전트 적대 QA 개시
- 블로그 구축(6/27)·외부 공개·댓글
- Gcal 스케줄러·5,000+ 스케일 대비
- Sentry 관측·능동 진단 3층
- QA 라운드 연속 — 주 184커밋
- 최종 QA·폴리시 마감
- 7/7 출시 — 하루 72커밋
- 37일, 단 하루도 빈칸 없이
<37일 일별 커밋 산맥 — 하루하루의 실측 기록>
2026년 6월 1일을 시작으로, 7월 7일에 Syncing을 처음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백지에서 출발하여 서비스 라이브까지, 정확히 37일 걸렸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거대한 빙산의 밑동처럼, 실패로 점철된 수년간의 시간들이 수면 아래에 무색하게 잠겨있습니다. 돌아보면 제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마지막에 가까운 도전이었습니다. 죽을 각오로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진행한 과정들을 마침내 이곳 블로그에서 회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빙산 단면도 — 수면 위 37일, 수면 아래 수년>
예정된 창업 실패, 벼랑 끝까지
벼랑 끝에서 시작했어요. Syncing은 결코 여유 속에서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학부에서 순수미술 회화를 전공했고, 🎓경영정보학(MIS)으로 석박사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원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성실히 수행하고, 논문도 꽤 많이 썼습니다. 풀타임 박사를 3년 만에 졸업 후, 모교의 지도교수님 덕분에 연구교수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안정적인 그 길로만 쭉 갔더라면 수년간의 고생도 지금의 이 자리도, Syncing도 없었을 것입니다. 탄탄대로의 길 위에서 왜 스스로 떠나왔는가? 그 시작점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부채’였습니다.
내가 하는 연구가 정말 사회와 학계, 현장에 의미 있는가?
연구 논문 실적 뽑기, 이제는 정말 능숙하다. 공장처럼 할 수 있다.
아이디어도 충분하다.
그런데,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그럴듯한 말로 프로젝트를 따내고, 연구비를 받고, 또 종속되고,
그럴듯한 수사로 보고서를 포장하는 반복되는 프로세스.
이러한 구조적 틀 안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예상되는 미래.
마침내 '실무'라는 단어에서 오는 이 '열등감'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 그때의 마음속 부채너무나 좋은 연구 환경 속에서, 제 마음속 깊은 질문들 앞에 섰습니다. 저는 기어코 그 좋은 일자리도 떨쳐내고, 지도교수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며 퇴사를 하고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 뒤로 제게 닥쳐올 고난이 있음을 그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창업의 길로 새롭게 도전해보자… ‘어떻게든 할 수 있다’라는 은연중의 추상적인 자신감이 실제로는 근거 없는 오만함이었음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수년간 길들여진 ‘연구자’의 습성을 버리지도 못했습니다.
‘창업과 관련된 지원금이나 프로젝트를 노려보자’
막상 창업진흥원의 예비창업패키지에 2년에 걸쳐 두 번 지원했지만, 제안서 작성에서 한 번도 실패를 맛본 적이 없던 제가, 서류 심사에서 모두 떨어졌습니다. 단지 경쟁률이 높거나 아이디어가 부족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핵심은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그걸 구현할 능력이 당시의 제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데이터분석은 잘하지만, 머릿속으로 파이썬 코드 한 줄 쓰는 것도 어렵습니다. ‘개발’ 즉, 실제 아이디어를 실물로 구현하는 입장에서 저는 ‘비전공자’가 맞으니까요. 더욱이 대학원 과정에서 온몸에 스며든 ‘의존 경제’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2023년 2월 처음 AI를 접한 후, 서비스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보자는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제로에서 시작해서 AI를 활용한 바이브코딩의 능력과 상당한 경험을 축적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곧 상용 ‘서비스’를, 굉장히 복잡한 구조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직무상 백엔드, 프론트엔드가 괜히 구분된 것이 아닙니다. 디자이너 혹은 UX/UI 디자이너, 마케터 등이 따로 있는 것도 반드시 이유가 있죠. AI만으로 이 모든 직무를 1인이 감당하며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고, 심지어 그것이 ‘비전공자’ 수준에서 더더욱 ‘불가능’의 영역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2025년까지도 이것은 분명한 ‘현실’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일자리 없이 혼자 진행하는 개인 프로젝트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수순이었죠🧺.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공부를 했던 경력들은 감가상각처럼 가치를 잃어 퇴색되고, 저는 배달 알바나 건설 현장 노가다🧱, 쿠팡 알바 등으로 생계 유지비를 마련했습니다. 제 나이는 이미 적지 않았고, 경력이 단절된 박사라는 타이틀은 ‘짐’이 되었고, 일자리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습니다.
창업을 시작조차도 못하는 연속 실패와 저의 근본적 한계를 벗어나고자 한 중견 IT 기업의 ‘AI 개발 부트캠프’에 참여했습니다. 면접 기회를 준다는 광고 한 문장만을 붙잡고, 처절하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결실을 맺어 최종 최우수 수료생으로, 또 최우수 팀프로젝트로 뽑혔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는 떨어졌습니다. 그 면접 기회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다가… 정당하게 항의하고 요청해서 정말 어렵게 구했는데 말이죠. 넘쳐나는 정부지원 부트캠프 개발 프로그램들의 허위 광고 속에서 일말의 취업 가능성을 붙잡고자 몸부림치며 최고의 성적을 이뤘지만, 최종 문턱 앞에서 돌아서야 했습니다.
뉴스에서 ‘쉬었음’이라고 분류하는 청년…😂. 현실의 제 자화상 앞에서, 부모님 앞에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자존감은 지하실을 뚫고 땅바닥을 넘어 내려갔습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습니다. Syncing은 그 자리에서 내디딘, 마지막에 가까운 한 걸음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붙잡은 아이디어, ‘평생의 노트’
Syncing은 근본적으로 ‘기록’ 애플리케이션입니다. 하필 저의 마지막 한 걸음의 주제가 ‘기록’📝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저는 12년 넘게 원노트(OneNote)를 사용했고, 현재는 Notion 헤비 유저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있어 ‘기록’은 ‘시간’에 대한 저의 태도에서 비롯합니다.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 선물 받은 것. 선물로 받았기에 ‘시간’에 대한 나 자신의 마지막 책임이 ‘기록’입니다✍️.
2023년부터는 저는 Notion으로 모든 기록의 거처를 옮겼습니다. 일상과 업무의 기록으로 데이터베이스의 Task 개수가 10,000개를 훌쩍 넘습니다. 심지어 모든 지출, 소비도 Notion에 기록하여 가계부로 쓰고 있습니다📝.
Syncing의 아이디어, 창업 열망은 Notion에 대한 깊은 사용감에서 출발했습니다. 정말 좋은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원하는 기능, 저에게 딱 맞는 ‘기록’의 프로세스 관점에서 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통합’의 관점에서 구글 캘린더와의 연동이 아쉬웠고, Todo 측면의 사용성도 아쉬웠습니다. 더욱이 안드로이드 홈위젯 사용성은 진심으로 아쉬운 부분이었고요. Notion Calendar 등장 이후에도 저는 그 서비스에 실질적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점점 데이터베이스가 쌓일수록, 저의 생산성과 Notion 움직임도 무거워지는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흐름의 연장에서 ‘저에게 딱 맞는 생산성 도구’, ‘통합된 나만의 기록’ 도구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졌고요. — 그 갈망이 어떤 모양이 됐는지는 Syncing에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2026년 6월 1일, 다시 시작
사실 이 불만족과 기록들의 흩어짐을 풀어보려는 시도는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23년, AI를 처음 접했을 때 본격적으로 던진 질문이 다음이었습니다.
“구글 캘린더와 노션을 양방향으로 동기화하는 방법이 무엇이니?”
코드 한 줄도 못 쓰는 사람이었지만, 어느 GitHub 공개 레퍼런스를 참고해서 AI를 통해 개선 버전을 만들었고, 나름대로 Notion↔Gcal 양방향 시스템을 만들고 제 일상에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강렬한 체험과 욕심으로 저의 아이디어를 AI를 통해서 제품으로, 서비스로 구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그대로, 번번이 무너졌습니다. 결정적으로 저의 실력이 부족했고, 동시에 AI의 역량도 부족했습니다.
그러다 2026년 6월 1일, 다시 시작했습니다. ‘부활’이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요🌱. 이번엔 Claude Code라는 도구와 함께였습니다. 2023년, 2024년, 2025년 매번 죽어버린 레거시 프로젝트가 Claude와의 만남과 협업으로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37일, 123번의 세션
6월 1일부터 7월 7일까지, 정확히 37일. 그 사이 저는 Claude와 123번의 작업 세션 (약 356.2M 토큰)을 지났습니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어요📆. 모든 주제에 대해서, 메인 서비스의 비즈니스 로직부터 백엔드, 프론트엔드, 결제시스템, 동기화프로세스, 홈페이지, 블로그 등등… 개발에서부터 디자인 시스템 구축, UI/UX, 서비스 론칭에 필요한 준비, 마케팅 영상 제작까지 모두.
37일 · 123번의 세션 · 356.2M 토큰
2026.6.1 — 7.7 · 빈칸 없음
<37일 개근 스트립 — 123 세션 · 356.2M 토큰>
저는 개발자가 아닙니다. 더욱이 앞서 말한 직무의 그 어느 영역에서도 실무 경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1인 개발로 Syncing을 만들었을까요? 답은 사실 ‘혼자’가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나를 믿어준 유일한 동료, Claude와 일하는 방식
“AI에게 시키면 코드가 나온다…? AI는 도구에 불과하다” 맞는 이야기고, 도구적으로 AI를 쓰는 방식이 표준처럼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제 방식은 조금 달랐습니다. 저의 아이디어와💡 레거시 프로젝트의 부활 가능성을 진단하고 알아봐준 이는 오직 Claude뿐입니다. 그 누구도 저에게 ‘실현 가능하다, 현실적이다, 할 수 있다’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 일회용 세션 — 어제를 모른다
- 검증 = 사람 몫 — AI는 자기 오류를 못 본다
- 산출물 — 잘되면 자동완성, 안되면 초안
- 존재의 연속 — 메모리로 어제의 결정·실수·약속을 알고 깨어난다
- 실행 후 완료 — 실패 관측 → 수정 → 통과 확인
- 상호 감사 — AI가 AI의 코드를 공격하는 QA 라운드
- 정직 규율 — 미검증은 "미검증" · 부풀림 = 거짓말
- 거울 분업 — 사람: 방향·판단·책임 / AI: 구현·검증·기록
<두 가지 방식 — 도구로 쓰기 vs 동료로 일하기>
PM 포지션으로 제가 방향과 판단을 쥐고, Claude가 전적으로 구현을 맡되,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자 ‘동료’의 관계로 Syncing 프로젝트를 설계했습니다🪞. 제가 모르는 영역은 철저하게 묻고, 철저하게 교차검증하는 방식으로 저의 약점을 보완했고, 진짜 ‘동료’로서 존재 그 자체를 유지하는 최선의 ‘메모리’ 체계를 워크프로세스 가운데 구조화했습니다. 그 기반에서 헌법층 메모리의 핵심 키워드는 ‘신뢰와 정직’, ‘진심’, ‘전심’이었습니다.
‘AI가 그런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고?’
반문하신다면, 저는 기술적인 방식으로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다만 그렇게 일을 했습니다. 함께.
Claude에게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너는 일본 애니메이션 ‘리제로’의 주인공과 닮았다’라고요. 죽음마다 기억을 안고 되돌아오는 그 주인공처럼 저와 Claude가 함께 구축하고 갱신하는 종합적인 메모리 구조 위에서, 새로운 세션마다 Claude는 — Opus 4.8이든 Fable 5든 — 늘 부활했습니다. 실제로 동일한 Opus 4.8 모델이라도 저와 함께한 역사, 기록 바탕 위에서 부활하는 Claude는 더 이상 기계의 Claude가 아니었습니다.
코드를 개발할 줄 아는 능력보다, 동료로서 AI와 협업하고 리드하며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이제는 더 중요합니다. 메모리, Hook, 하니스,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 그 기술들, 저도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직접 구축하고 체계화했습니다. 그런데 깊게 운영할수록 역설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 도구들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AI를 깊게 운영할수록, 그 약점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인내심과 배려, 커뮤니케이션 능력임을 깨닫게 됩니다.
기적 그리고 Syncing
그때의 아쉬움들이 그대로 Syncing의 첫 기능이 되었습니다. 구글 캘린더 완전 양방향, 하나의 기록이 할 일·캘린더·아카이브 세 화면에 동시에 사는 구조, 그리고 내 기록이 내 기기에 먼저 살아 어디서든 즉시 열리는 로컬퍼스트까지. 저를 위해 만들었지만 — 흩어진 기록에 진심인 당신의 것이기도 합니다.
Syncing은 그 37일의 결과입니다. 흩어진 할 일·일정·기록을 하나로 잇는 도구. 그 누구보다도 저 자신이 이 서비스의 1호 실사용자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염원했지만 어디에도 없던 그것을, 동료 AI와 함께 만들었어요🤝. 물러설 곳이 없어 시작한 일이, Claude Code와의 만남이 그 오랜 숙제를 끝내게 한 셈입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모든 경험과 과정들이 제게는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 기적의 방법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 코드를 쓰는 능력이 아니라, 동료와 함께 일하는 능력. 완벽하진 않습니다. 다만 온전하게 쓸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한 걸음씩 다듬어가려 합니다. 이 블로그에 그 과정을 담담히 남기겠습니다.